(비전21뉴스) 수원시 만석공원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족구장 옆 소나무 세 그루가 눈에 띈다.
각기 세 방향으로 받친 지주목 색깔이 노릇하고 바닥 흙빛이 불그스레한 것이 한눈에도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잘 알려진 600년 노거수(老巨樹) 속리산 정이품송의 후계목들이다.
수원시 장안구가 만석공원에 조성한 ‘충과 효를 잇는 공간’에 시민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안구는 ‘효’의 표상 정조대왕이 애민으로 빚은 백성의 삶터에 ‘충’의 상징인 정이품송 후계목을 심어 독특한 역사문화 명소를 만들었다. 공원과 소나무를 접목한 물리적 공간에 충과 효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아낸 발상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아담한 소나무 세 그루 앞 ‘忠과 孝를 잇다’라고 적은 안내판에서는 그 의미를 읽어보려는 아이들, 시민들의 모습을 평일에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안내판 아래쪽엔 충북 보은군에서 유전자 검사로 정이품송 후계목임을 확인해 발급하는 ‘정이품송 자목(子木) 인증서’가 붙어있다.
31만㎡에 이르는 만석공원 한 자락에 소나무 세 그루가 들어섰을 뿐인데 의미가 남다르다.
정이품송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정2품(正二品) 벼슬을 받은 소나무다. 지금으로는 장관급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종양 치료차 속리산 법주사로 가던 길에 가마가 소나무에 걸리자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길을 터줬다고 한다. 세조가 기특히 여겨 나무에게 그리 높은 벼슬을 내렸고, 정이품송은 임금을 섬기는 ‘충’의 상징이 됐다.
효원(孝園)의 도시 수원을 세운 정조대왕은 소나무 사랑이 유별났던 임금으로 꼽힌다. 가난한 백성들이 날마다 소나무를 땔감으로 베어가자 나뭇가지에 엽전을 매달아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엽전으로 땔감을 사서 쓸지언정 소나무는 베지 말란 뜻이었다.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로 향하는 원행길엔 내탕금(임금의 개인 재산)을 내려 소나무 500그루를 심었다. 경기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수원 ‘노송지대’가 그렇게 생겨났다. 지금 만석공원의 정이품송 후계목이 자리 잡은 곳이 그 옛날 노송길 곁이라 의미를 더한다.
후계목을 심는 행사는 지난 8일 ‘만석거 벚꽃축제’ 기간 열렸다. 최상규 장안구청장을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 시·도의원들이 뜻깊은 순간을 축하했다. 주민자치회 등 주민들도 삽으로 흙을 보탰다.
식수 행사에 함께한 수원시충청도민연합회 이종윤 회장은 “충청의 자랑 정이품송의 자손이 제2의 고향 수원에 뿌리내리게 돼 기쁘고 뿌듯하다”며 “속리산 정이품송만큼 웅장하게 자라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최상규 장안구청장은 “만석거부터 방화수류정, 지지대고개, 노송길까지 장안구에 어린 역사문화 이야기는 끝이 없다”며 “지금 이곳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들이 새로이 터를 잡은 정이품송과 함께 우리 아이들, 그 자손의 자손까지 면면히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